글쓰는서령 2011. 9. 19. 10:46

 


박씨전

저자
조혜란 지음
출판사
두산동아 | 2006-08-05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참 좋은 우리 고전』시리즈 제13권《박씨전》. 본 시리즈는 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사람이 덕은 몰라보고 얼굴 예쁜 것만 찾으면 복이 없을 뿐 아니라 집안도 망하는 법이다. 네가 지금 얼굴이 곱지 않다는 이유로 네 아내를 구박하니 예의범절이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수신제가(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림)하겠느냐? 옛날 제갈공명의 처 황씨는 비록 못생겼지만 어진 덕행을 지녔고, 천지의 조화를 부리는 재주가 있었다. 제갈공명은 바로 그 부인과 서로 공경하며 어려운 일을 의논했기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게야. 네 처는 신선의 딸인 데다가 덕행이 있다. 게다가 '첫째 부인은 내치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느냐?」- 본문 중에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박씨 부인이 펼치는 영웅적인 기상이 담긴 <박씨전>

<박씨전>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인 박씨 부인의 신통한 능력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인조 임금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 뛰어난 능력으로 좌의정 자리까지 오른 이득춘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에게는 늠름하고 잘생긴 이시백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가르침을 본받아 글솜씨가 뛰어나고 학문에 정진하는 마음가짐이 반듯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득춘은 금강산에 사는 박 처사(벼슬을 하지 않고 외진 곳에 사는 선비)를 만나게 된다. 둘은 바둑을 두고 옥피리를 불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곧 서로 처자식의 혼사를 논하게 된다. 이에 이득춘은 박 처사의 딸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성품이 바르고 예사롭지 않은 비범함을 지닌 박 처사를 믿고 아들과의 혼인을 약속한다. 그러나 박 처사의 딸은 "피부는 마른나무같이 얽은 데다 불그죽죽하고, 코는 거의 입에 닿을 지경이었고, 눈은 달팽이집처럼 툭 불거져 나왔으며, 입은 두 주먹을 넣어도 오히려 남을 정도로 컸다. 게다가 이마는 메뚜기 이마같이 넓적했으며……"(p.30)와 같은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제가 얼굴이 못난 데다 덕행이 없어서 남편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뒤뜰에 제가 지낼 방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저는 그 곳에서 지내겠습니다." 상공이 그 모습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보니 자식이 못나 아비 말을 듣지 않았구나. 이는 다 내가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까닭이다. 내가 다시 녀석을 타이를 것이니 너는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라."」- 본문 중에서

 

부인의 못난 얼굴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이시백… 그러나 박씨 부인은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한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솜씨라 할 수 없는 정교한 바느질 솜씨로 시아버지의 조복을 짓는가 하면 심지어 병자호란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까지 정확히 예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인 피화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나무를 심어서 숲을 이루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용과 범이 머리와 꼬리를 맞문 듯하였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록 남편에게 외면당하는 서러운 처지였으나, 피화당에 거처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린다. 비범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녔으나, 볼품없는 용모가 박씨 부인의 창창한 앞길을 막는 듯했다. 박씨의 외모를 문제 삼아서 차별하고 무시하던 사대부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라… 솔직한 심정으로 남편 이시백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면에, 덕을 쌓아 허물을 벗은 박씨 부인의 아리따운 모습에 넋이 나가서 마음을 단숨에 바꿔버리는 남편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냈다.

 

 

 

 

「"조선이 비록 작지만 예의와 법도가 갖춰진 나라입니다. 사람이 오륜(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즉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모르고 어떻게 예의를 알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예쁜 여자만 좋아하고 예의가 중요한 줄은 모르셨나 봅니다. 사오 년이나 저를 업신여겨 푸대접하셨지요. 여러움을 같이한 첫째 부인은 내칠 수 없다고 하는데 당신은 다만 아름다움만 찾았을 뿐 의리가 중요하다거나 대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으셨지요.」- 본문 중에서

 

<박씨전>은 외모지상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으며, 남녀 차별이 심했던 조선 시대에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성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온 박씨 부인, 그녀가 보여준 기묘하고도 신통한 능력은 비현실적인 측면이 적지 않으나,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을 우리가 사는 모습에 빗대어 보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남녀평등사회라고 말을 하고 있음에도 아직 보이지 않는 곳곳에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른바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고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면 반듯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닌 사람을 우선채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하튼 박씨 부인의 높은 자존감은 여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냈다. <박씨전>은 병자호란 이후, 인조가 굴욕을 취한 것에 대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씌여졌다고 한다. 이같은 내막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책이 지닌 시사점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