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야담>
청구야담
「이 책에서 고른 14편은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니라, 150년 전 사람들의 모습이 비교적 잘 드러난 작품에 무게를 두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사람, 양반과 상민의 갈등, 시정 세태, 사랑과 갈등 등과 같은 당시의 시대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을 중심에 놓았고, 패배한 역사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이야기와 충성을 다한 개 이야기도 실었다. 《청구야담》에 실린 이야기의 다양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원문에 쓰인 그대로 풀어서 썼다. 《청구야담》이 지닌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본문 중에서
<청구야담>은 조선 시대의 언어와 풍속 그리고 관습을 보여 주는 기묘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290여 편 정도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저자가 수험생의 논술 대비를 위해서 쉽게 풀어 쓴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교과서에 수록된 우리의 고전, 대학에서 추천하는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수능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교과 과정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우리 고전 중에서 150년 전 오늘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야담집 <청구야담>
십 년 동안 《주역》이라는 책만 읽겠노라 다짐하며, 살림은 아내에게 전부 맡겨버린 선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방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책만 읽은 지 칠 년째 되던 날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보이지 않아서 찾던 와중에 머리를 깎은 중 하나가 방 안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선비는 깜짝 놀라서 유심히 살펴보니, 바로 자신의 아내였다. 아내는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칠 년 동안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몸이 성한 곳이 없는데다가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버린것이다. 이에 충격받은 선비는 조선에서 제일 부자인 집을 찾아가서 무턱대고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의 당찬 모습에 무려 삼만 냥이라는 큰 돈을 빌려주고 선비는 그 돈을 아내에게 모두 맡겨버린다. 그 돈으로 남은 삼 년을 잘 지내보자는 뜻이었을터, 선비의 아내는 현명하게 판단하여 장사를 시작하고 원금보다 큰 수익을 거두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남편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고 책만 읽는 선비가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우리는 여기서 삶에 대처하는 선비의 처신을 향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선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인물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은 무엇이었는지, 위기에 처한 삶을 재치있게,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 조상의 익살스러운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형님과 아우는 몸이 약하니 다시 학업에 힘쓰십시오. 나는 십 년을 기한으로 삼아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형수와 제수는 친정으로 가 계십시오. 그리고 형님과 아우는 절에 들어가서, 스님들이 남긴 밥이라도 얻어먹으며 과거 공부를 하십시오. 그렇게 십년을 공부하면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지요." (…) 결국 세 형제는 서로 이별을 하고, 형수와 제수도 각각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형과 동생은 눈물을 쏟았지만, 홍은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청구야담>에 실린 《집안을 일으킨 허홍》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쓰러지는 집안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홍의 모습… 경기도 여주에 허씨 성을 가진 선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선비와 그의 아내는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남겨진 세 형제는 서로 의지하면서 과거 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세 명 모두 별다른 경제활동은 하지 않아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에 무언가 결심을 하는 둘째 홍이다. 몸이 허약한 형과 아우는 학업에 계속 힘쓸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를 시작한다. 양반이 농사를 짓겠다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웃 주민들…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않고 묵묵히 재산을 축적한다. 이와 같이 옛날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가족애까지 짐작할 수 있다. 신분과 권력으로 자신을 무장한 몇몇 소인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가 있는가하면,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현명한 자의 지혜도 발견할 수 있는 <청구야담>이다. 이외에도 수록된 여러 단편을 통해서 우리가 저마다 중요시 여기는 삶의 지혜나 가치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