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거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나는 글을 읽는다. 그리고 읽는 과정에서 깨달은 느낌이나 반성을 글로서 다시 표현한다. 짜임새 있게 구성된 글은 아닐지라도 흐르는 물처럼 방향을 정해놓고 적다 보면 나의 내적 성장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때로는 붓글씨를 적는다. 하얀 화선지에 진하게 스며드는 먹물의 번짐을 보노라면 문득 '필연(必然)'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오래전부터 깊은 약속을 하고서 이제야 만난 것은 아닌가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꿈꾸는 이상 세계를 하나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내가 서 있다.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을 동그랗게 그려넣는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한다.
어쩌면 세상 모든 작가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적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심성이 은연중에 표출되는 대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헌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진리와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왔는지에 따라 글의 주제와 성격도 그에 맞추어 변해간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게 된다. 근래에 나는 원성 스님의 책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종파를 초월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향한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는지도…….
마음공부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혹은 자기 성찰, 깨달음이라고 해야 되나. 확실히 마음공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의 글은 다르다는 걸 느낀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자연의 작은 쉼터를 찾아내는 사람,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에 항상 맑은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원성 스님의 모습이다. <거울>은 풍족하게 채워진 삶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사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책이다. 항상 원성 스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어쩜 그리도 글과 그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지 놀랍기만 하다.
「산사의 뜨락에는 벚꽃과 불두화, 국화꽃이 차레대로 피고 졌습니다. 간밤에는 달빛이 희미하더니만 오늘은 아침나절부터 눈이 내려 은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운무는 가야산을 감싸고, 매화산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으니 시야는 저절로 청정해지고, 겨울답게 콧날이 시린 추운 날씨에 도량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어제는 동안거 결제일. 용맹 정진의 박차를 가할 선원 스님들의 눈빛은 푸르게 빛을 내었고 학인學人 스님들의 각오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겨울은 그야말로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지요.」- 본문 중에서 」
산사의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구태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온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원성 스님의 성장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산길을 더듬거리며 내려와 공중전화를 찾는 원성 스님이 전화를 건 사람은 어머니였다. 눈물을 애써 참으며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출가한 몸이나, 부모님을 극진히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느꼈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삽화는 마치 빗물에 젖은 풍경으로 가득한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책을 계기로 원성 스님의 다른 저서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량한 스님의 감수성이 책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