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풍경
가끔은 현실이란 곳이 너무나 답답해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떠난다는 것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속세라 불리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그 감정이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같은 이내 삶에 찾아온 불청객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나만이 지닌 고유의 색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 때로는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나 자신을 그들의 말에 맞추어 과감히 탈바꿈하고 싶은 마음은 추어도 없다. 그 강하다는 개성으로 인한 장단점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을 지켜준 개성을 버릴 순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런 글을 적었다. 대세의 손아귀에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겠노라 다짐했던 것, 그 삶이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나 같은 삶이 있으면 분명히 나와 다른 삶도 있다. 상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녀의 삶이 여자로서는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라 보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출가를 결심한 사람이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저 삶이란 것에 자신의 의지를 보태어 새롭게 창조하려는 마음이거늘, 왜 우리는 선입견을 품고 그 결심을 가차 없이 내던질까.
얼마 전에 읽은 원성 스님의 <마음>, <꽃비>에 이어서 이번에는 <풍경>을 읽었다. 이 책은 원성 스님의 첫 번째 책이다. 부모님의 품에서 출가를 결심하고서 홀로 시작하는 동자승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켰음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까까머리 어린 승려가 되어 삼천 배를 올리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부모님께 불효했던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이 시려 오고 아파왔다. 글과 그림 속에서 울고 웃는 맑은 모습의 동자승은 원성 스님의 자화상이었다. 한적한 오솔길에 길게 드리워진 청송의 그림자 아래에 머물며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는 동자승의 눈가에 이슬처럼 맺힌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슬픔 가지곤 웬만한 설움 가지곤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새벽 먼동에 파르라니 깎은 머릴 매만지며 나의 믿음이신 그분의 품에 이르러서는 그만 흥건히, 흥건히, 목놓아 울어 버렸다. 찬 눈 몰아치던 간밤에 좌복을 함께 적시던 알알이 3천 주. 하얀 눈서리가 장삼 등골에 맺혔더랬어도 가슴 싸늘하게 쓸어 내리는 풍경 소리가 나를 놀라게 해도 한 마음 오직 한 생각. 샘가에 이르러 꽁꽁 언 살얼음 깨고 옥수를 긷는 붉은 손가락. 오늘을 기다려 사뭇 시집살이 억척 마당쇠였던 행자 생활. 끝내 운명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첫 삭발 머리처럼 송송한 세상의 인연이 부뚜막 장작과 함께 훨훨 타오르던 날.」- <풍경> 첫 삭발 중에서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사람이 좋더라. 그 의미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지만 그래도 나는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와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원성 스님이 찾기 시작한 내면의 깨달음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군불 지피는 따스한 시간 속에서 자신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몸소 보여준 원성 스님의 마음을 나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풍경>은 동자승의 자기성찰이 담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