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서령 2011. 3. 12. 18:32

 

 

오늘은 몸에 밴 긴장감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날인가 보다. 하루 동안 푹 쉬면서 피로를 잠시나마 씻어냈다.

그리고 먼지가 내려앉은 벼루를 털어내고 맑은 먹물을 적당량 부었다.

붓을 잡고 심신을 수양했던 옛 장인의 정신을 내가 재현하기엔 다소 접근하기 힘든 영역도 있겠지만,

나는 방문을 굳게 닫아놓고 먹을 가는 시간이 참 좋더라.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먹을 간다는 것.

천천히 먹을 가는 그 마음과 시간, 그리고 여백을 남겨놓고 기다리는 첫 순간, 화선지와의 대면에 다다르면 깨닫는다.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뚜렷한 경계선과 통일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그곳은 모든 선이 거부할 수 없는 중심축이다. 붓과 하나가 되는 마음도 그 원리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서예를 배우고자 했던 것은 먹을 머금은 붓이 화선지에 내려앉는 순간, 흑과 백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경이로움을 느꼈기에.

지금쯤 벼루에 담가놓은 붓에 적당한 먹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붓을 잡을 것이다.

 

붓을 잡겠다는 일념은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이다. 붓이 내가 되고, 내가 붓이 되는 것.

즉, 붓과 나의 혼연일체와 같다. 조화가 이루어지면 하나의 역사가 탄생하는 법.

 

조금 다른 예를 들자면, 지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현상을 통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제아무리 위대한 문명의 제국을 세우고 영토를 넓혀간다 할지라도,

그 무엇으로도 자연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어긋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 아닌가?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세상은 인간이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본다.

모든 것은 흑과 백의 조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법이다.

부디 더 이상의 참사가 없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