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이러스
세상은 무한한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그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건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인간의 삶이 지니는 궁극적 가치는 소위 학문에서 말하는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은 자아실현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이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하고는 싶지만 여건이 안되는 그 사회의 모순에 질려버린 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제아무리 위로와 배려의 정을 베푼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는 창조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는데, 정작 사회가 창조성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예컨대, 우리는 보통이라는 개념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보통 이하의 것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통의 수준과 보통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수준이 유순하게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희생이 필요한 법,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없다.
우리의 사고가 이론에 강하고 실전에 약하다는 것은 크나큰 허점이 될 수 있다. 사고의 판을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 정작 실패의 구덩이에 빠지도록 끊임없이 악의 모순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성공하라고, 성공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사회의 참된 인재상의 자격은 결국 부와 명성으로서 새로운 갑옷을 입게 되리라고
은연중에 우리의 심리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부와 명성의 가치에 대하여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 추구하는 실현의 가치는 무엇이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에 그 무엇을 더하여도
개인이 선천적으로 소속된 혈육과 같은 사적인 환경은 타고난 것이기에, 임의로 변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구성원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며, 개인이 태어난 장소가 될 수도 있겠지.
하나의 주제가 찬반논란을 거쳐서 올바로 정립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의 타협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다. 매 순간 우리는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가?
끈적한 악성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에 서서히 침투되어 종족을 퍼트리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냉정하게 예의주시하고 판단하는 사이에, 인간관계가 잿더미처럼 흩어지고 말 것이다.
바람불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잿더미와 같은 우리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관찰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사고는 빠르게 진화한다. 그리고 어지럼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선택사항이 늘어나는 현상도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법, 그 모든 것이 바이러스다.
모순과 모순이 손을 맞잡는 순간, 진정으로 진실된 자는 외면을 받는 세상의 이치.
진실을 어둠으로 가리는 사회의 커다란 손바닥 아래에 아직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뜻이 같은 종족이 제법 그럴싸하게 뭉침으로써 거대한 힘을 발휘하노라 떠들지언정,
단 하나의 종족이 지닌 힘을 꺾을 수 없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녹슬지 않는다. 오랫동안 숙성되어 그 진가를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