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책제목 :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지은이 : 듀나
출판사 : 자음과모음
우리의 삶은 시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둔갑하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나약하게 순응하며
우리의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삶 속에 등장하는 인간사, 자연사에 대하여 우리는 저마다 통달한 깨달음을
어떠한 가치관으로 승화시켜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숙성된 자아를 통해 전해오는 가능성의 씨앗과 같은 언어로 탈바꿈하여 책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인과응보에 대하여, 현실을 넘어선 독특한 내면의 세계관으로 표출하는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여 무한 반복되는 일정을 소화하기엔 다소 거부감이 강하게 작용했나 보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무미건조한 우리의 삶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를 형이상학적을 넘어서
심층적이고 여태껏 등장하지 않았던 낯선 빛깔들로 가득한 듀나의 신간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은 풍자의 미학이 빚어낸 픽션을 가장한 논픽션과 같은 느낌을 풍긴다.
현실의 부조리함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독특한 통찰력이 그 만의 언어로 승화되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 쏟아져 내린 듯하다.
「더 이상 나는 그의 담당관이 아니지만 나는 그래도 가끔 그 남자를 만난다.
로봇이 떠나자 그는 철학적이 되었다. 그는 아름다움, 성스러움, 진리와 같은 걸
소유하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이제 인류 역사의 모든 끔찍한 일이 위에 열거한 것들을
멋대로 독점하려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p.144
다양한 장르의 단편소설이 등장하는 와중에 굳이 손꼽아 짤막하게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본문 중에 <소유권>이라는 글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인간에게 있어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소유 당할 존재의 가치에 대하여 논하는 소설이라 생각되는데,
자신의 의사를 정당하게 표출할 수 없는 로봇을 등장시켜서 그를 중심으로 소유권 쟁탈전이 벌어지게 되는 내용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소유권>의 내용이 전개되는 전체적인 맥락이 마음에 들었다.
등장인물로 하여금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의 빈 공간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었음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번뇌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단편소설이 있지만, 글을 접하는 독자 스스로 해석하기에 따라 작가의 의도는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나는 그래서 현실의 중간 지점을 오가는 이런 단편소설집이 좋다.
정형적인 굴레를 과감히 벗어난 새로운 형식과 마주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듀나의 단편 소설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나에게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총 1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삶을 향한 13번의 묵념을 제시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