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겨둔 마지막 공간
이것은 책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시간을 보내는 목적과 그를 향한 나의 초점이 오로지 책을 읽는 것에 매료되어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허나, 신기한 것은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문장력, 어휘력, 사고력, 판단력, 감수성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
의도하지 않았기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 부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증가하고,
혹은 줄기차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한 관문 중의 하나, 그것은 바로 책읽기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음이 도리어 의도성을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보여준 것은,
지금 내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끝없이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
사회구성원이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나와 다른 생각의 차이에서 충돌하는 현상과 직면할 때,
나의 모자람을 곱씹어보는 느낌을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
나의 오만과 편견이 생생한 입자가 되어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나간다.
착각을 가장한 나의 자만심. 그것도 하나의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나를 남기는 시간 속에서 ‥‥‥ 나를 느끼다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기도.
일기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일기 속에 새겨놓은 나의 가치관이 자라는 것과 같다.
이곳에 적어야 할 나의 내적 성장을 간직하고픈 나의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내가 다시 자라고 있다.
밖으로 나오는 날이면, 나의 그릇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 너머의 존재감을 곱씹는다. 미묘한 질감이 느껴지는 특수함으로 물든 세상을 마주한다.
나만이 소유했던 감정이 오롯이 만인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의 모자람을 정확하게 입증하는 세상의 그릇에 압도당하여 살아온 시간의 의미를 되묻곤 한다.
그것이 정답이었는가에 대하여, 하나의 사상을 만인에게 던져놓고, 판가름을 지켜보는 것만큼
매혹적인 유혹은 없을 것이다. 사냥의 시작인가?
이 시대에 그들이,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분류할 수 없음에
탄식의 몸부림으로 울부짖지만, 그들이 던져놓은 그물망에 뚫려버린 허점을,
오류를 발견하는 것만큼 두 번째 유혹이 또 있으랴.
하나의 질문이 내포한 사상은 실로 거대하다.
그것을, 우리는 영원히 꿰뚫지 못할 것이다.
수수께끼와 같은 무언의 증폭심과 폭풍처럼 우리의 정신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지의 생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라.
내가, 지금의 내가 이러한 공백을 남기는 이유는,
나의 사상이 공백을 채울 수 없음을 실토하는 것과 같다.
그럼 내가 말하는 공백이란 무엇이기에,
그것은 가능성을 가장한 비워둘 수밖에 없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인가.
지금 나는 흩어진 조각을 모으고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나의 자화상이다.
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의 이상세계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