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편지>
책제목 : 살인자의 편지
지은이 : 유현산
출판사 : 자음과모음
쓰레기 소각장을 연상시키는 사회의 부조리함, 극악무도한 범죄를 심판하는 법의 딜레마,
세상으로부터 퇴출당하고 방황하는 청소년, 인간이 지닌 잔혹성,
정의의 사도라 자칭하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소설 <살인자의 편지>
그 어떤 사소한 연결고리조차 성립되지 않는 사람들이 불규칙적인 리듬을 타고 숨진 채 발견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교수형 밧줄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가출소녀, 모터사이클 선수, 예비역 중령은
아무런 연관성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살인자는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함인지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의 범행 동기에 대하여,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죄를 심판하기 위함이었노라 당당히 밝히고 있다.
「폭력은 윤리적인 잣대를 갖지 않는다. 인간은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 속에서 결단 한다.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가. 누구도 결단의 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없다.
행위의 윤리적 함량과 정당성은 미래에 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결정된다.」p.299
이 책은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잡다한 쓰레기더미를 퍼올리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청소년이 갈 수밖에 없는,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하여 고발한다.
연이어 터지는 연쇄살인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범죄분석관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털끝조차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이는 살인자의 현란한 수법에 이르기까지 법의 질서에 맞대응하는 그들의 피 말리는 추격전이 인상적이다.
범인은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법의 심판자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쫓고 쫓기는 그들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독자는 왜 그들은 죽어야만 하는지,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정답을 찾아가게 된다.
서로가 제대로 맞물리지 못해 삐거덕거리는 어긋난 수레바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치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목에 차가운 금속이 다가왔다.
작고 예리한 금속 날이 펄떡거리는 경동맥을 눌렀다.
외과용 메스였다. 메스의 은색 섬광 위에 유제두의 가늘고 흰 손가락이 보였다.
유제두가 말했다. "다 읽었어?"」p.398
빗나간 사랑 속에 감추어진 비극적 결말, 그들의 목에 숭고하게 내려앉는 교수형 밧줄이 내포한 의미는 무엇일까.
책에서 살인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습니다.
폭력과 복수의 함성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는 늘 빗나가서, 정체 모를 악마나 악당에게 꽂힙니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돌아나갈 길은 없습니다. 정면돌파밖에 없습니다.
저는 골목의 담장을 허물고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진짜 억압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폭력으로 그 길을 열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괴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것이 실은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살인자의 편지는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와 같다.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한국형 추리소설이라 말하고 싶다.